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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손, 일생 딱 두 번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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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손이 천명과 싸운 무기로 알려진 당나귀 턱뼈 워낙 기도가 없던 삼손의 생애에 딱 두번의 기도가 기록됩니다.  첫번째는 목마른 상황에서 '물을 먹고 살게 해달라'는 기도였고, (삿15:18) 두번째이자 그의 인생 마지막 기도는 '블레셋과 함께 죽게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삿 16:30)  첫번째 기도의 응답으로 기적으로 솟아나는 샘물을 먹고 살아난 삼손, 그러나 회복시켜주신 건강한 육신으로 다시 죄에 빠지고 드릴라와 사랑에 빠져 죽음으로 향하게 됩니다.  반면 두번째 기도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그가 살았을때 죽인 블레셋 사람보다 죽어서 죽인 사람이 더 많았더라! 는 것입니다.  세상을 향하여 살고자 하는 기도 vs  세상을 향하여 죽고 사명을 위해 살고자 하는 기도의 결과가 이렇게 판이하게 다릅니다.  오늘 나는 어떤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까?   #사사기15장 #매일샘물 https://youtube.com/live/hT_0f1e8G4U?feature=share

하나님의 나라에 초청받지 못한 사람들 -신명기 2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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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ssembly of God -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올 수 없는 사람들 1. 고환이 상한자나 음경이 잘린 자      이방신에게 의식을 행하며 맹세한 자들의 의식에 동참한 사람들      하나님을 믿는다 하나 실상은 세상에 자신의 삶을 바치는 사람들        *신약적으로: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이 없는 사람들 2. 사생자 - 근친상간자들 (주석)     짐짓 알면서도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 사람들          *신약적으로: 십자가의 죄용서를 이용하여 짐짓 죄를 짓는 사람들  3. 암몬사람 모압사람      하나님의 백성을 저주하고 해하려 했던 사람들      *신약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고 무너뜨리려는 사람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더욱 크시다      예수님의 족보에 시아버지와 관계한(사생)  '다말'이 들어갔고      모압 여인이었던 '룻'이 들어가 있으니      예수님을 통한 용서는 우리의 어떤 죄보다 크다. 

아직도 반 컵이 남아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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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없어진 물이 보이는가, 아니면 아직도 남은 반컵이 보이는가? 100% 만족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하나님 앞에 서는 날까지 인생에는 부족함 투성일 것이다.  없는 것을 불평할 것인가 남겨진 것으로 감사할 것인가? 감사는 관점의 훈련이다. 

내가 모르는 찬양에도 손을 드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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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모르는 찬양이 나올 때에도 열심히 따라 부릅니다. 심지어 일부러 두 손을 들고 부릅니다. 하나님을 높이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두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번째,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면 더 잘 배우게 되기 때문이고  두번째, 앞에 서시는 분들에게 마음의 지지를 표시하기 위함입니다.  배우는 사람도 쉽지 않은 순간인데, 그 배 이상으로 새로운 찬양을 인도하는 분들의 마음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럴때 우리가 적극적인 지지를 보인다면 더욱 힘이 나겠지요?      언제부터인가 내가 아는 곡이라서 은혜가 되는때보다 내가 신뢰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부르고 인도하는 곡이라서 은혜되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습니다. 점점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과 함께 공동체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공동체를 세우는 일, 공동체를 지키는 일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https://youtu.be/vDtb1fdVRYE

그리심산, 에발산... 선택의 몫은 나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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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이 그리심산, 오른쪽이 에발산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차지하는 일은 이미 아브라함때부터 정해져있다.  아니, 메시야를 보내시기로 하신 그 때부터 정해진 일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메시야를 보내시기 위해 국민을 준비하시고 그 땅을 준비하시기로 하셨으니까...  신명기 11장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가나안은 반드시 들어가게 되는 땅이라는 점을 여러번 상기시켜주신다. 심지어 헌신을 맹세하게 하시는 그리심산과 에발산 모두가 이미 가나안 안에 들어있는 땅이다.  그런데 이 땅에 들어가서 누가 살아남게 되는지는 선택의 여지로 남겨두신다.  인생은 항상 선택의 문제다. 아침부터 잠드는 순간까지 선택이다.  하나님의 복된 길은 이미 선포되었고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뜻대로 진행된다.  그 일에 쓰임받느냐, 주변인으로 사느냐는 것은 전적으로 나의 선택의 몫인 것이다.    주님, 나의 묵상과 기도, 그리고 선택이 항상 주님의 계획과 일치되게 하소서.  생명의 그리심산에 거하게 하소서. 

'중단하는 힘'을 가진 사람 모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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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차를 판별하는 중요한 기준 두가지는 엔진과 브레이크 시스템이다.    좋은 엔진은 반응력과 추진력이고 브레이크 시스템은 즉각적으로 중단하는 힘일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끝까지 잘 쓰임받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이렇게 '순종하는 힘', '중단하는 힘'을 가진 사람들이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를 간청하는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이르시기를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그리고 여호수아를 준비시킬 것을 명령하신다. (신3) 이에 40년을 순종해온 모세는 쓴 뿌리를 품지 않고 즉각적으로 여호수아를 준비시키는 일에 착수한다. ( 신명기 연구   https://youtu.be/QXfchTNfgtc?t=1420   )   그렇다면 과연 모세는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했을까?   모세는 마태복음의 변화산 사건속에 다시 등장하여 분명히 가나안땅을 밟고 있다. 모세는 영원이라는 안목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신뢰로 '중단하는 힘'을 보여준다.  이렇게 순종함으로 율법의 대표자 모세는 하나님의 큰 그림을 완성시킨다. 그것은...  1. 율법의 결말은 구원이 아니라 실망이다. 2. 율법은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하지 못한다.  3. 율법은 은혜를 바라보게 하며 은혜가 백성을 하나님께로 인도한다. (여호수아=예수)  4. 우리에게 중요한 일은 '나의 만족과 유익'이 아니라 '여호수아 세대'를 준비하는 일이다.  모세의 '중단'은 정말 아름답다. 

시간을 허비하고 방황하게 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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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은 실행력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을 코앞에 두고 다시 광야로 돌아가 40년을 방황하게 된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그것은 한마디로 순종할 시간에 분석했기 때문이다. (신명기 1장) 하나님은 이미 그들보다 앞서 행하시는 분이기에 백성은 정탐꾼을 보낼 필요가 없었다. 순종함으로 그 땅을 향해 나가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든 이기게 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신중하게 정탐꾼을 보내어 분석하기를 원했다. 순종할 타이밍에 분석하기로 한 그들의 결단은 옳지 않았다. 결국 정탐꾼들의 보고에 의해 백성은 범죄하고 40년간을 광야에서 방황하게 된다. 믿음의 세계를 떠나서도 성공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실행력'에 있다. 더군다나 우리는 하나님의 큐사인을 받고도 지체하는 일이 있어선 안되겠다.   뭔가를 해서 망하는 것보다 아무것도 안 해서 망하는 경우가 더 많다. 예측 가능한 대다수 걱정은 망상에 가까운 기우다. 저질러 놓고 수습하는 건 무모한 게 아니다. 빠른 성과를 내는 탁월한 전략 중 하나다. 큰 그림이 그려졌다면 뭐든 바로 시작하는 게 좋다. 어디로 여행 갈지 정했다면 그냥 출발하는 거다. 계획은 비행기 안에서 세워도 충분하다. 뭐든 직접 하면 쉬워지지만, 미루고 걱정만 하면 성과 없이 시간 낭비만 한다. 일단 시작하면 해낼 수 있는 방법을 찾고 그 방법에 계속 몰입한다. 미루면 잡념과 망상에 괜한 힘만 뺀다. “일은 막상 해보면 쉬운 것이지만, 행하지 않고 고된 생각만 하고 있다면 할 수 있는 것을 놓쳐 버린다.” 맹자 말씀이다. 이건 수천 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진리다.   - 머니맨